박수경 (고려 무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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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박수경은 고려의 무신으로, 패서 출신의 호족이다. 고려 태조 휘하에서 원윤으로 활동하며 견훤의 군대를 격파하고, 조물군 전투, 공산성 전투, 일리천 전투 등에서 활약하여 고려의 건국과 후삼국 통일에 기여했다. 정종 즉위 초 내란 평정에 공을 세워 대광의 지위에 올랐으며, 딸은 태조에게 시집가 몽량원부인이 되었다. 964년 아들들이 참소를 받아 옥에 갇히자 근심 속에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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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경 (고려 무신) - [인물]에 관한 문서 | |
---|---|
기본 정보 | |
한자 | 朴 守卿 |
로마자 표기 | Bak Su-gyeong |
신상 정보 | |
이름 | 박수경 |
본명 | 박수경(朴守卿) |
다른 이름 | 미상 |
별명 | 미상 |
출생일 | 생년 미상 |
출생지 | 미상 |
사망일 | 964년 음력 8월 |
사망지 | 미상 |
매장지 | 미상 |
가족 관계 | |
배우자 | 미상 |
아버지 | 박지윤(朴遲胤) |
어머니 | 미상 |
자녀 | 박승위(朴承位) 박승경(朴承景) 박승례(朴承禮) 몽량원부인(夢良院夫人) |
정치 활동 | |
주군 | 태조(太祖) |
재위 기간 | 918~964 |
관직 | 무신(武臣) |
기타 | |
묘호 | 미상 |
시호 | 미상 |
종교 | 불교(佛敎) |
가문 | 평산(平山) |
사당 | 미상 |
2. 생애
패서(浿西, 지금의 경기 북부와 황해도 지방) 출신의 호족이다.[1] 대광위(大匡尉) 박지윤(朴遲胤)의 아들이자 박수문(朴守紋)의 동생이다.
태조의 휘하에서 원윤(元尹)으로 있을 때, 기묘한 계책으로 견훤의 군대를 격파하였다.[2] 925년(태조 8) 조물군 전투에서는 박수경이 지휘한 하군만이 승리를 거두어 태조가 이를 기뻐하며 그를 원보(元甫)로 삼자 박수경은 자신의 형 수문보다 높은 벼슬에 오를 수 없다고 사양하여 태조가 두 형제를 모두 원보로 삼았다.[2] 927년(태조 10) 대구 공산성 전투에서는 적에게 포위당한 태조를 구출하였으며[2] 936년(태조 19) 마군장군으로서 후백제의 신검을 선산 일리천에서 토벌하였다.[2]이러한 공로로 훗날 역분전을 정할 때 특별히 토지 200결을 하사받고 평산을 식읍으로 받았다.
정종 즉위 초에도 내란을 평정할 때 공을 세워 대광(大匡)이 되었다. 박수경의 딸은 태조에게 시집가 몽량원부인이 되는 등 공신으로서 많은 영화를 누렸다. 그러나 964년(광종 15년) 세 아들 박승위, 박승경, 박승례가 참소를 받아 옥에 갇히자 박수경은 근심과 울분으로 세상을 떠났다.[3]
2. 1. 가계 및 출신
아버지는 박지윤이다. 형제로는 형인 박수문과 성무부인 박씨가 있었다. 슬하에 박승위, 박승경, 박승례 세 아들과 몽량원부인 박씨를 두었는데, 딸 몽량원부인은 태조의 후비가 되었다.2. 2. 고려 건국 이전 활동
패서(浿西, 지금의 경기 북부와 황해도 지방) 출신의 호족이다.[1] 대광위(大匡尉) 박지윤(朴遲胤)의 아들이자 박수문(朴守紋)의 동생이다.태조의 휘하에서 원윤(元尹)으로 있을 때, 기묘한 계책으로 견훤의 군대를 격파하였다. 925년(태조 8) 조물군 전투에서는 박수경이 지휘한 하군만이 승리를 거두어 태조가 이를 기뻐하며 그를 원보(元甫)로 삼자 박수경은 자신의 형 수문보다 높은 벼슬에 오를 수 없다고 사양하여 태조가 두 형제를 모두 원보로 삼았다.[2] 927년(태조 10) 대구 공산성 전투에서는 적에게 포위당한 태조를 구출하였으며 936년(태조 19) 마군장군으로서 후백제의 신검을 선산 일리천에서 토벌하였다.[2]
940년에는 고려 건국과 후삼국 통일에 공로가 있는 조신과 군사에게 역분전이 하사되었을 때 특별히 200결을 하사받았다. 이러한 공로로 훗날 역분전을 정할 때 특별히 토지 200결을 하사받고 평산을 식읍으로 받았다. 정종 즉위 초에도 내란을 평정할 때 공을 세워 대광(大匡)이 되었다. 박수경의 딸은 태조에게 시집가 몽량원부인이 되는 등 공신으로서 많은 영화를 누렸다. 그러나 964년(광종 15년) 세 아들 승위(承位)·승경(承景)·승례(承禮)가 참소를 받아 옥에 갇히자 박수경은 근심과 울분으로 세상을 떠났다.[3]
출신지인 황해도 평주는 신라의 변방 군사 구역 패강진이 설치되어 끊임없이 후백제의 침공을 받았다. 이에 왕건은 수경을 원윤으로 임명하여 신라 방어를 명했다.
2. 3. 고려 건국과 후삼국 통일
패서(浿西, 지금의 경기 북부와 황해도 지방) 출신의 호족이다.[1] 대광위(大匡尉) 박지윤(朴遲胤)의 아들이자 박수문(朴守紋)의 동생이다.태조의 휘하에서 원윤(元尹)으로 있을 때, 기묘한 계책으로 견훤의 군대를 격파하였다.[2] 925년(태조 8) 조물군 전투에서는 박수경이 지휘한 하군만이 승리를 거두었다.[2] 태조가 이를 기뻐하며 그를 원보(元甫)로 삼자 박수경은 자신의 형 수문보다 높은 벼슬에 오를 수 없다고 사양하여 태조가 두 형제를 모두 원보로 삼았다.[2] 927년(태조 10) 대구 공산성 전투에서는 적에게 포위당한 태조를 구출하였으며[2] 936년(태조 19) 마군장군으로서 후백제의 신검을 선산 일리천에서 토벌하였다.[2]이러한 공로로 훗날 역분전을 정할 때 특별히 토지 200결을 하사받고 평산을 식읍으로 받았다.[2]
출신지인 황해도 평주는 신라의 변방 군사 구역 패강진이 설치되어 끊임없이 후백제의 침공을 받았다. 이에 왕건은 수경을 원윤으로 임명하여 신라 방어를 명했다. 후백제가 다시 신라를 침공하자 이를 격퇴했고, 925년 조물군의 전투에서는 여러 장수들이 패퇴하는 가운데 수경이 지휘한 부대만이 승리를 거두자 왕건은 이를 기뻐하며 원보로 임명했다. 또한 927년 발성의 전투에서 왕건이 포위되자 탈출을 도왔으며, 936년 후백제와의 결전에도 참전했다.
940년에는 고려 건국과 후삼국 통일에 공로가 있는 조신과 군사에게 역분전이 하사되었을 때 특별히 200결을 하사받았다.
2. 4. 고려 건국 이후
패서(浿西, 지금의 경기 북부와 황해도 지방) 출신의 호족이다.[1] 대광위(大匡尉) 박지윤(朴遲胤)의 아들이자 박수문(朴守紋)의 동생이다.태조의 휘하에서 원윤(元尹)으로 있을 때, 기묘한 계책으로 견훤의 군대를 격파하였다.[2] 925년(태조 8) 조물군 전투에서는 박수경이 지휘한 하군만이 승리를 거두어 태조가 이를 기뻐하며 그를 원보(元甫)로 삼자 박수경은 자신의 형 수문보다 높은 벼슬에 오를 수 없다고 사양하여 태조가 두 형제를 모두 원보로 삼았다.[2] 927년(태조 10) 대구 공산성 전투에서는 적에게 포위당한 태조를 구출하였으며[2] 936년(태조 19) 마군장군으로서 후백제의 신검을 선산 일리천에서 토벌하였다.[2]이러한 공로로 훗날 역분전을 정할 때 특별히 토지 200결을 하사받고 평산을 식읍으로 받았다. 정종 즉위 초에도 내란을 평정할 때 공을 세워 대광(大匡)이 되었다. 박수경의 딸은 태조에게 시집가 몽량원부인이 되는 등 공신으로서 많은 영화를 누렸다. 그러나 964년(광종 15년) 세 아들 승위(承位)·승경(承景)·승례(承禮)가 참소를 받아 옥에 갇히자 박수경은 근심과 울분으로 세상을 떠났다.[3]
출신지인 황해도 평주는 신라의 변방 군사 구역 패강진이 설치되어 끊임없이 후백제의 침공을 받았다. 이에 왕건은 수경을 원윤으로 임명하여 신라 방어를 명했다. 후백제가 다시 신라를 침공하자 이를 격퇴했고, 940년에는 고려 건국과 후삼국 통일에 공로가 있는 조신과 군사에게 역분전이 하사되었을 때 특별히 200결을 하사받았다.
2. 5. 말년
패서(浿西, 지금의 경기 북부와 황해도 지방) 출신의 호족이다.[1] 박지윤(朴遲胤)의 아들이자 박수문(朴守紋)의 동생이다. 964년(광종 15년) 세 아들 승위(承位)·승경(承景)·승례(承禮)가 참소를 받아 옥에 갇히자 박수경은 근심과 울분으로 세상을 떠났다.[3]3. 평가
4. 등장 작품
- 태조 왕건](KBS, 2000년~2002년, 배우:김관기)
- 제국의 아침](KBS, 2002년~2003년, 배우:정상철)
- 빛나거나 미치거나](MBC, 2015년~2015년, 배우:김진호)
- 달의 연인 - 보보경심 려](SBS, 2016년~2016년, 배우:성동일)
참조
[1]
서적
10세기 인물열전, 쇠유리부터 능창까지 후삼국 22인의 삶
푸른역사
[2]
서적
10세기 인물열전, 쇠유리부터 능창까지 후삼국 22인의 삶
푸른역사
[3]
서적
10세기 인물열전, 쇠유리부터 능창까지 후삼국 22인의 삶
푸른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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